제비꽃

봄꽃이 다 피고 진다

지금은 네가 꽃으로 필 시간이다

바위 그늘 속 제비꽃

생강나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

이른 봄 생강나무가

하느님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노란 털실봉오리를 만들어 꽃을 피운다

세상을 아름답게 열어라

그런데 생강나무가 세상을 사랑하는 새봄의 방법은

오로지 자기 뿌리 깊은데 고였던

자기 빛깔을 드러내는 것, 그뿐이었다

사과나무의 우화

나는 사과나무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른다

해와 별은 언제 만나고

사과는 어떻게 만들며

사과의 붉은 빛깔은 어디서 가져오는 것인지

사과는 무슨 힘으로 달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뿌리는 어디를 향해 있는지

사과의 향기는

누구에게서 받아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사과나무가 아래에서 위로 자라고

사과는 안에서 밖으로 자란다는 것 밖에

거미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들

내 가느다란 줄에 매달아 놓을까봐

피었다 지는 꽃잎도 붙잡아 놓을까봐

가볍게 부딪혀도

부서지는 것들

흩어지는 것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나무도 외로워서 운다

소나기가 내려서 운다

소나기를 맞으며 운다

엄마가 아파서 운다

소나기를 맞으며 나만 아는 나무를 찾아가

나무와 함께 운다

바람 불면

나무도 후드득 후드득 눈물을 뿌린다

나무도 외로워서 흔들리고 외로워서 운다

나무는 안다

이 세상에는 위로 받지 못한 눈물이 있다는 것을

닦아주지 못한 눈물이 외로움이 된다는 것을

그래 나는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도
가슴 설레인다.

아프고 나서

일요일마다 엄마랑 산책을 한다

지난 일요일에는 동네 길을 걸었다

이쪽으로 가면 엄마가 다니는 병원이 나오고

이쪽으로 가면 내가 다니는 학원이 나온다

엄마가 짜장면을 먹자해서 짜장면을 먹었다

첫눈

이 세상은

그대로 쓰러져도 좋은 곳

어느 구석에선들 따뜻이

맞아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