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노마라는 아이가 있었다. 노마는 네 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 숨이 멎은 노마를 가족들이 땅에 묻으려 하는데, 노마가 갑자기 숨을 쉰다. 신비로운 아줌마가 빛나는 나비를 따라가라고 했다고 한다.
기적적으로 살아나긴 했으나, 노마는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게 된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뛰놀 수가 없다. 노마는 혼자 천천히 다니며 작은 것을 자세히 바라보는 아이가 된다.
그러다 다정히 돌봐주던 누나가 병으로 죽자 노마는 큰 충격에 빠진다. 아버지까지 돌아가지자 노마는 더욱 어둡고 우울해진다.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사물을 보는 시선이 다르네.” 중학교 미술선생님이 노마의 그림을 칭찬해준다. 누나처럼 따스한 선생님의 관심이 좋아, 날마다 그리다 보니 실력이 쑥쑥 늘었다. 이때부터 그림은 노마의 마음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어린 시절 동무 옥이를 다시 만난다. 작가와 화가가 되자며 난생처음 희망찬 미래를 꿈꾸지만, 옥이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한동안 방황하던 노마는 마음을 다잡고 미술대학에 들어간다. 그런데 대통령이 사망하고 군인들이 정권을 잡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국의 대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했으나, 노마는 학교와 아르바이트 화실을 오갈 뿐이었다.
그런데 5월 18일 광주에서 군인들이 무력 진압하여 많은 학생이 다친다. 분개한 시민들이 몰려 나와 군인들과 충돌한다. 병원마다 부상자가 넘쳐나고, 시위와 관계없는 일반 시민과 노약자까지 죽어나간다.
노마도 시민들이 만든 대책위에 들어간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으리라 결심했는데, 군인들이 몰려오자 무서워서 담을 넘어 도망친다.
비겁하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는 ‘어둑시니’가 되어 노마를 괴롭힌다. 자칫 죽을 뻔했던 순간 ‘순이’ 덕분에 목숨을 구한다. 그 후 노마는 미술교사가 되었고, 순이와 결혼하여 두 아이도 태어난다.
그러나 어둑시니는 끊임없이 노마를 괴롭힌다. 그림을 마음껏 그리면 좋아질 것 같아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마음처럼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다. 노마는 체계적인 그림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난다. 날마다 팔이 아프도록 그림을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세계적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소망한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서 전시회를 할 수 있기를….
형편이 어려워 일 년 만에 귀국한 노마는, 남들이 그리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떤 섬에 지적장애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간다.
노마는 시설에 머물며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그리기도 했다. 자폐아, 다운증후군, 지적장애아들과 지내며 노마는 물속의 물고기처럼 편안해졌다. 자신도 어렸을 때부터 장애아였고, 5.18을 겪은 후 남모르는 고통을 홀로 겪어왔기 때문이다.
노마는 아이들을 그림에서나마 넓은 들판에 데려다 주었다. 하늘로 우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게도 해주었다. 자세히 볼수록 어여쁜 들꽃 같고, 어둠 속에서 더 빛나는 별들 같은 아이들이었다.
지적장애아들을 그린 지 십오 년 만에 연 노마의 전시회는 많은 이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평범한 일상을 같이 누리는 날이 오기 바라는 마음으로, 노마는 혼신을 다해 예술 혼을 불태운다.
시력과 청력이 극히 나빠졌지만 노마는 아이들과 더 가까워짐을 기뻐한다. 노마의 그림은 예술성을 인정받아 UN과 유네스코에 초대되었고, 전 세계에서 초청 전시가 이어졌다. 루브르 박물관에도 그림이 걸려, 힘든 시기 간절히 빌었던 소원을 이룬다.
노마는 광주에서 전시회를 열고 그 날의 기억과 마주한다. 노마를 괴롭히던 어둑시니는 마침내 사라진다. 장애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고 배우는 행복한 마당을 꿈꾸며, 노마는 마음을 다해 그림을 그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