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추억이 필요한 우리

장현정 청소년소설『여시골 아이들』

(시와 동화. 2018)

우리에게는 추억이 사라져버린 지 이미 오래다. 더욱이 학교와 학원으로 내몰려 또래와 함께 공유할 이야기 거리가 없는 우리 아이들은 세상을 더 삭막하고 재미없게 살아가는 것 같다.

모두 살기 어려웠던 시절. 불과 오래지 않은 세월에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 힘을 북돋아 다독여주며 살았던 우리들이었지요.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며 끝내 꿈을 이루는 주인공 추자와 그의 동무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야기로 와 닿는 시절이 되었다.

경상도 여시골 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벌어지는 열한 꼭지- 도깨비불, 은어, 사슴벌레, 가을 서리, 겨울 속으로, 보리밟기, 졸업식, 그리움 그리고 지난 시간들, 집으로, 해후, 끝의 시작-

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소재로 아련한 옛 생각을 하게하면서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모두가 착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특별하지도 않은 것 같으면서 특별하여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어른들에게는 지나간 시절의 아련한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등장하는 아이들이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불평 없이 헤쳐 나가는 이야기들이 결코 어둡지 않고 독자의 마음을 평화롭게 이끌어준다.

아이들이 별똥별에 소원을 빌 때

“엄마랑 아버지랑 안 싸웠으면 좋겠다.”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빌었다.” 는

그리 거창하지도 않는 소원들을 저마다 외쳐대던 아이들.

미움도 없고 남의 사정을 인정해주며 함께 고민하여 더 좋은 방향으로 서로 이끌어 주는 모습들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이다.

세태가 변하여 지금은 남의 농작물을 취하면 절도죄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과일 서리와 남의 집 채소밭에서 서리를 하여 밤참을 해먹어도 그리 흉이 아니고, 벌을 받지 않는 그런 행복한 세상이 있었다는 것을 요즈음 아이들이 알기는 할까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아이들은 염치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야, 너무 크고 좋은 거 손대면 안 되는 거 알재?”

“그리고 한 개 이상 따면 안 된다.”고 서리를 하면서도 서로에게 속삭이는 장면을 보면서 그 시대 어른들이 포용하고, 용서해주고, 나누는 삶, 남에게 피해 안주려는 삶의 모습을 보였기에 아이들도 좋은 인성으로 자라나는 참으로 따뜻한 사회였을 것 이라는 생각이다.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대도시 고무신 공장에 다니면서, 야학을 거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주인공 추자가 고향에 돌아온 날 고향 친구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지요.

“아, 우리 담임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견디는 거 하고 버티는 거는 다르다 카더라. 말하자면, 견디는 거는 그냥 화가 나는데 참는 기고, 버티는 거는 화가 나는데 화나는 상황을 이겨내는 거라 카더라.”

“어렵다.”

“그러니까 추자가 처음 신발 공장에 가서 시간만 때우고 힘든 걸 참을라고만 했으모 지겨웠을 기라. 그래서 참다가 병이 났을 수도 있고 또 더 이상 못 참고 집으로 돌아 왔을란지 모르지. 그런데 추자는 어려워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아 가지고 버텨 냈는 기라. 버텨낸다는 것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포기하지 않는 기라 카데. 그리고 버텨내는 거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나가는 기 도전이라 카데.” - 본문 146쪽-

사회가 산업화 되어가는 시대에 결핍과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속 깊은 아이들을 보면서, 요즈음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 부닥친다면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묘사한 대화 글은 얼핏 보기에 좀 정 없어 보일 수 있으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한 문장은 깊이 신경 쓰지 않아도 물 흐르듯이 읽혀지는 아주 좋은 산문을 읽는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좋은 작품은 그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지고, 더 나아가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가 된다면 최선이라 본다.

끝으로 송재찬(동화작가), 이창건(시인) 님께서 본 책 추천의 글 중에 한 부분을 올려본다.

「여시골 아이들」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20세기의 낡은 듯한 이야기를 장현정은 소중히 간직했다가 21세기 급변하는 시대에 새로운 이야기로 다듬어 내놓은 것이다. 작가의 의무는 현세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 못지않게 함몰되어 가는 우리의 역사와 이야기를 찾아내어 새로운 이야기로 써 내는 것이다.』

글(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