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닭 치리와 깜이의 아름다운 우정

신이림 동화 『싸움닭 치리』 바람의아이들(2021.03.05.)

사람을 안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알고 있는 신이림 작가는 말소리조차 조용조용하고 생김 또한 여리여리 해서 한 송이 들꽃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싸움닭 치리>를 읽기 시작한 순간, 나는 몇 번이나 이 작품을 과연 내가 아는 신이림 작가가 쓴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동문단에서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필자가 아는 한) ‘투계’에 대한 이야기라니! 마치 투계장에 나가 사는 사람처럼 작가는 어쩌면 그 세계의 모습을 이토록 자연스럽고도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책을 읽을수록 작품 안에 깔린 깊은 주제며 위험을 무릅쓰고 싸움닭(투계)가 되는 두 수탉의 우정과 사랑,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에 빠져들고 말았다.

아, 한 작가의 내면에 이렇게 다른 모습들이 숨어있다니! 나는 마치 무슨 무협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읽는 듯 손에 땀을 쥐며 작품을 읽어 내려갔다.

이제 막 어엿한 수탉이 된 치리와 깜이는 누구보다 단짝 친구이면서 경쟁자이다. 그들은 서로 티격태격하며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모든 걸 함께 한다. 그러나 치리는 수컷이라면 닭장 안에서 안일하게 사는 것보다 뭔가 더 큰 세상에 나가 용맹하게 사는 게 더 나은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투계꾼이 마을을 찾아오고, 깜이가 먼저 투계가 되기 위해 마을을 떠난다. 깜이가 자신의 기회를 가로채 투계가 되어 떠났다고 오해한 치리도 뒤이어 털보를 따라 투계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어느 날 온 몸에 상처를 입고 경기 도중에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다치고 죽는 걸 고통스러워하는 깜이를 만난 치리는 갈등을 겪는다. 누군가를 죽이고 피 흘리는 격투 끝에 차지한 승리, 기쁨이 무엇인가? 깜이는 이미 투계가 그토록 잔인하다는 걸 알고는 친구인 치리에게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투계꾼을 따라나섰다는 걸 안 치리는 더욱 안타까웠다. 결국 치리와 깜이는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찾아 함께 탈출을 도모하였다. 하지만 다시 붙잡혀 투계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치리는 자신이 가야할 길, 친구 깜이를 위한 복수 등 여러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 때 길잡이별이 되어준 늙은 수탉을 만난 치리는 깜이의 복수를 하고, 그리던 자유의 몸이 된다.

치리가 늙은 수탉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혼자 힘들게 걸어갈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얼마나 든든한 의지가 되는지를 작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또 나와 함께 먼 길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가 있다면, 그 어떤 위험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은연중에 가르쳐준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쭙잖은 자존심과 상처, 실수를 통해 때로는 그런 친구를 잃을 때가 참 많다. <싸움닭 치리>를 보면서 치리와 깜이의 우정이 새삼 부러운 까닭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신이림 작가는 이제 내게 더 이상 여리여리한 들꽃이 아니라 우뚝 솟은 한 그루 나무처럼 여겨진다.

나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치리처럼 닭장 밖의 세상으로 용감하게 뛰쳐나올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날개를 멋지게 펼치고 날아오르는 순간 이미 자신을 위한 새로운 세상이 활짝 열릴 테니까. (글· 이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