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

김정옥 동화 『1951년, 열세 살 봉애』 머스트비(2021.10.27.)

이전에 출간한 동화 <선재>, <콩과자는 맛있어>등으로 이미 단단한 필력을 보여준 김정옥 작가의 새책이 나왔다.

제목 그대로 전쟁 한 가운데 남겨진 열세 살 소녀 봉애의 파란만장한 한 시절을 그린 작품이다. 전쟁통에 가족의 죽음을 목격하고 어린 동생 순득이를 데리고 1.4후퇴 피난 대열에 든 봉애 앞에 펼쳐지는 가혹한 피난살이.

한치 앞의 상황조차 장담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도 서울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를 찾는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 버텨가는 봉애 남매.... 부족한 물자와 물리적 통증을 겪는 중에도 간혹 눈물겨운 인정이 피어나 독자를 울린다.

....엄마는 몇 년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 엄마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다섯 살배기 큰아들을 찾으며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아들 사진 한 장 갖고 오지 못했다고 평생 애통해 하던 엄마가 아들에게 돌아간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이렇게 70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비록 엄마는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가슴 한쪽에 늘 응어리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고자 <1951년, 열세 살 봉애>를 쓰게 되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가 전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동화를 읽는 내내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때론 주인공과 합일된 듯 슬픔이 차오르고, 맛깔나게 섞인 이북사투리가 읽는 재미에 빠지게 하는 힘도 충분했다.

작가노트에서 ‘북에 두고 온 아들에 대한 죄책감과 절절한 그리움으로 70년의 모진 세월을 지낸 엄마가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고백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모름지기 문학작품에서 진정성이란!

오늘 따라 햇빛이 눈부셨다. 봉애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았다. 그 때 멀리서 키가 큰 아저씨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떤 여자에게 종이를 내보이며 무엇을 물어보는 것 같았다.

.... 키가 큰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봉애가 있는 수용소로 향해 뛰어오다시피 걸어오고 있었다.

....

“아.... 아, 바지!”

키 큰 아저씨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불었다. 훈훈하고 달달한 바람이었다.

작가는 이 마지막 문장을 위해 얼마나 많이 고심했을까. 참혹했던 한 시절을 겪고 난 이후, 남은 사연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점 또한 일미였다.

(글/백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