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가족의 사랑

-이경순 『사라질 아이』 마루비(2022년3월28일)

‘반구대 암각화’는 동화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음속에 품어봄직한 소재였다. 실제로도 여러 동화작가들이 반구대의 그 신비하고 매력적인 바위그림을 바탕으로 멋진 작품을 써왔다. 현대의 아이가 구석기, 혹은 신석기 시대의 아이를 만나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설정들도 엇비슷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경순의 <사라질 아이>는 읽는 이에게 또 다른 묵직한 감동을 준다. 우선 주인공인 준수와 신석기 시대의 아이 수리의 만남을 통해 작가는 자신들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위로와 감동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암각화는 그걸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모티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가 몹시 내리는 날 학원 셔틀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준수는 엄마가 차로 자신을 데리러 온다고 하자 신이 나서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준수를 데리러 오던 엄마는 그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준수는 늘 엄마가 죽은 건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슬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고래를 좋아하는 준수를 위해 ‘체험학교 역사탐방단’에 신청서를 냈다. 바로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가는 일이었다. 마침내 암각화를 보러 바위 가까이 다가간 준수는 낯선 더벅머리 아이, 수리를 만나게 된다. 고래 목걸이를 잃어버려다는 수리는 준수를 데리고 어두운 굴속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목걸이를 찾게 된다. 하지만 곧이어 개기일식처럼 굴이 캄캄해지면서 어느 틈에 준수와 수리는 신석기 어느 마을로 쑥 빠져 들어간다. 바닷가에서 고래를 잡으며 살아가는 원시인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낯선 원시인들에게 붙잡혀 고난을 당하는 준수를 받아준 건 고래이빨의 엄마였다. 고래이빨은 준수를 동생처럼 여기며 바다에서 노 젓는 법이며 고래 잡는 법 등 다양한 기술들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고래이빨은 늘 무언가 슬픔에 잠겨있다. 바위그림을 보러 간다는 동생 새가슴을 혼자 보냈다가 동생을 잃고만 기억 때문이다. 고래이빨 엄마가 부족장에게 부탁해서 준수를 받아준 것도 겁쟁이처럼 보이고 나약한 준수가 마치 죽은 작은 아들 새가슴처럼 보여서였다.

준수는 그곳에서 ‘영혼이 데려 온 아이’라는 뜻의 호야로 불리며 노루귀, 곰발바닥, 여우눈 등 신석기 아이들을 만나고 고래이빨에게 고래잡이를 배우는 등 색다른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수리는 어디로 갔다간 다시 나타나고, 또 사라졌다간 또 나타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곰발바닥과 한 조가 되어 고래잡이 대회에 나간 준수는 놀랍게도 5등이라는 성적을 거둔다. 그리곤 수리와 함께 새가슴이 보러 갔다는 암각화를 보러 갔다가 캄캄한 굴속을 거쳐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고래이빨이 준 고래 목걸이를 걸고서. 작가는 작품의 말미에 수리에 대한 말을 하진 않았지만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수리가 바로 고래이빨의 동생 새가슴이라는 걸.

<사라질 아이>는 아들과 동생을 잃은 신석기 시대의 엄마와 고래이빨, 그리고 자신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슬픔에 빠져있던 준수가 수리와 함께 그 상처를 서로 극복해가는 이야기이다. 또한 멀고 먼 그 신석기 시대의 가족도, 몇 만년 이후의 지금 시대에도 가족은 늘 그리움과 행복의 근원이며 소중한 존재라는 걸 작가는 고래와 원시인, 암각화를 통해 감동 있게 그려냈다.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은 박진감 있게 그려낸 신석기 시대의 고래잡이 모습과 마치 그 시대를 살아본 듯 생생하게 그려낸 원시인들의 생할모습이 무리 없이 잘 그려졌다는 점이다. 그건 이경순이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2004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주제와 소재를 아우르고 주물러 오랫동안 발효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패스트푸드식 작품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두 소년의 위로와 감동의 메시지가 큰 울림을 주는 수작을 만난 건 큰 기쁨이었다.

(글•이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