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2일, 내가 3학년이 된 날, 아직도 난 그날을 잊지 못한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피부에 큰 눈, 오뚝한 코, 작은 입을 가지신 우리 선생님이 보이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셨다. 2학년 때도 나와 같은 반이었던 지혜가 나에게 다가왔다.
“채은아, 너 저 선생님 알아? 뭔가 이상해 보이셔”라고 지혜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어떻게 처음 보는 선생님을 내가 알겠는가! 나는 모른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선생님은 앉으신 채로 본인 소개를 하셨다. 1학년, 2학년 때는 다 일어서셔서 인사하셨는데 이번 선생님은 좀 독특하셨다.
“안녕하세요? 우리 3학년 8반 친구들. 나는 1년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지낼 이주민 선생님이에요. 여러분, 사실은 제가 다리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병이 있어요. 어려운 말로는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가 있는 장애인이에요. 모두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평등하다는 점, 아시죠?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 여러분도 다 같이 행복한 반을 만듭시다!”
선생님은 담담하게 본인을 소개하셨다. 쉬는 시간에 전서영은 왜 자기가 장애인과 수업을 해야 하냐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난 오히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가 됐다.
6월 9일, 이날은 선생님과 함께 보낸 날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그날은 축구 경기가 있었다. 상대 팀 6반과 우리 반 모두 담임 선생님이 응원해 주시려고 오셨다. 우리 선생님은 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승강기로 운동장까지 오셨다. 선생님께서는 공에 맞으실 뻔하셨지만, 간신히 피했다. 너무 아찔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계속 응원해 주셨다. 경기가 드디어 끝났다. 우리가 1점 차이로 지고 말았다. 나는 경기를 진 건 괜찮은데 열심히 하지 않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한승주 같은 애들 말이다. 한승주는 키도 150㎝로 우리 반 중에서 1등으로 키가 크다. 근데도 6반 안주연이 찬 공 하나 막지 못했다. 그냥 공 쪽으로 가지도 않았다.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휠체어를 끌고 다니시면서 열심히 응원해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10월 31일, 다른 반 아이들은 다 할로윈 파티를 했는데 2반과 우리 반만 하지 못했다. 2반 선생님께서는 독감에 걸리셔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셨고 우리 반 선생님은 휠체어가 고장 나서 학교에 나오시지 못하셨다. 그래서 2반과 우리 반은 엄청나게 지루한 영어를 1시간 동안 해야 했다. 친구들의 눈꺼풀이 점점 감기고 있을 때 우리 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께서는 일찍 와서 우리와 할로윈 파티를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휠체어 바퀴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셨다. 분명 선생님의 잘못이 아닐 텐데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짧지만 즐거웠던 할로윈 파티를 보냈다.
2월 10일, 종업식 날이었다. 교실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장난을 치던 강지석과 지윤민도 오늘은 참 조용했다.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털털하게 웃으면서 3학년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오늘을 끝으로 우리 선생님께서는 시골의 작은 학교로 가신다고 했다. 그러니까 진짜 마지막인 것이다. 선생님은 한 손에 휴지를 쥐고 입술을 앙다무신 채로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온 힘으로 막고 계셨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조용히 흐느끼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작은 선물 상자 26개를 들고 오셨다. 그 안에는 선생님 얼굴과 우리 반 얼굴이 담겨 있는 26개의 아름다운 전구가 들어 있었다. 모두가 환하고 밝게 웃고 있었다. 서로의 앞날이 밝기를 축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전구의 불이 켜지자마자 우리 반 모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상자를 한 사람마다 한 개씩 쥐여주셨다. 우리는 그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상자를 열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편지였다. 편지 내용은 ‘안녕, 채은아. 너를 보는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매우 슬프구나. 넌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 따스하게 나를 대해 주었어. 정말 고마워. 너는 4학년이 되어서도 잘할 거야. 너를 믿을게. 파이팅!’ 내 두 눈에선 수문을 연 댐처럼 눈물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웃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과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금도 난 친구들과 선생님이 그리울 때면 친구들과 선생님의 얼굴이 어둡게 사라지지 않도록 전구를 켜서 내 방과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추어 본다. 그러고는 8반과 함께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