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벼 타작 끝내고 울라간다. 그 때까지 네 아버님 잘 챙기거라.” 하시고 끊으시려다 편지 잘 받았다고 한마디 덧붙이신다. 여장부이신 어머니의 말씀은 늘 짧다. 그래도 하실 말씀은 다 하신다.
이른 아침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출근을 서두른다. 퇴근길엔 교통사고가 나서 서울병원으로 이송된 아버님 병원에 가봐야 한다. 남산만큼 부른 배에서는 작은 키에 마른 엄마를 모르는 게 분명한 아이가 발차기가 한창이다. 전화 상담이 계속되어 버거운 일터. 옆 직원이 돌려주는 전화. 수화기 건너편에서 와락 울음소리가 무섭게 달려온다. 바쁜 낮에는 좀처럼 연락하지 않는 남편은 꺽꺽 목이 메어 소식을 전한다. 전화기를 흘리고 털썩 주저앉아 운다. 직원들은 친정 엄마냐고 묻는다.
그렇게 둘째가 세상에 나오기 한 달 전에 노랗게 눈이 부신 가을 단풍 길로 마지막 통화를 남기고 떠나가셨다. 벼 타작하는 사람들 새참으로 빵과 우유를 사가지고 가시던 어머니를 젊은 운전자는 한낮의 졸음으로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생만 하셨던 어머니. 셋까지 낳으라고 모두 키워주겠다시던 어머니. 지금 세 아이는 좁은 집에서 각자 방이 없어도 서로 양보하며 잘 지낸다.
어머니는 핸드폰이 없었다. 꼭 하나 갖고 싶다고 하셨다. 환갑이었던 그해. 어머니는 초파일에도 가족들의 등을 밝히고 당신을 위한 등은 밝히지 않으셨다. 아버님으로 인해 환갑잔치를 미루셨던 어머니를 위해 핸드폰을 주문했었다. 올라오시면 놀라게 해드리려고 미리 말씀 드리지도 않았었다. 봄에는 나물과 약초를 뜯어 버스에 올려 보내 경동시장에 파시고, 벼농사에 밭일까지 늘 바쁘셨다. 염전을 하시는 아버님의 일까지 챙기시느라 너무 지치셨을 어머니.
늦은 봄날 처마 밑에 앉아 낙수소리 벗 삼아 책을 읽는 내게 한 잔의 커피를 갖다 주셨다.
“이 시커먼 것이 뭣이 맛나다고?”
효도하고 순한 사람은 또한 효도하고 순한 아들을 낳으며 오역한 사람은 또한 오역한 아들을 낳는다고 태공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처마 끝의 落水를 보라고 방울방울 떨어져 내림이 어긋남이 없지 않냐 하셨다.
셋을 키우기 힘들어도 어머니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