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소감>

2008 동화집『잠자는 고등어』로 제4회 윤석중 문학상 수상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의 우화를 꿈꾸며

소식을 받은 날은 선친의 기일이었습니다.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25년 전 세월의 계단을 말없이 내려가면서 참 고요한 마음이었는데, 뜻밖의 소식은 물면에 던져진 돌멩이였습니다. 제일 큰 물무늬는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참으로 과분한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요즘 들어 대단한 장편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늘 그렇고 그런 제 단편들이 부끄러 웠고, 이 상에 걸맞는 선배,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한편으로 '아버지가 이제사 나를 이해하시는 걸까?'라는 물무늬가 가슴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것이 어쩌면 글 쓰는 것 때문이라 생각하 셨을 선친께서는 겨우 첫 동화집이 나오는 것만 보고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늘 미안했고, 당신 또한 이 세월 내내 미안해하셨던 걸까, 울컥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에 눈두덩이 시렸습니다. 그리고 34년 전 윤석중 선생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신춘문예 시상식이 막 끝난 자리였습니다. 식장에 지각을 하고, 신문사에서 내민 영수증에 서명을 하는 사이 심사위원이셨던 선생님이 "심사위원에게는 뭐 없나?" 하며 제 곁을 지나가셨던 것입니다. 시골에서 막 올라온, 서울에 두 번짼가 세 번째 간 촌뜨기 초등학교 선생은 그 순간으로 10여 년이 지나서야 건널 세월의 강을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언제나 큰 산으로, 수화기를 들어도 말이 나오지 않는 큰 어른으로 제 마음 속에 살아 계셨습니다. 해마다 첫 연하장을 쓰면서 가슴이 떨렸고, 지금도 학생들에게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면 얼굴이 붉어지지만 이제는 가만히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고 깊고 깊은 곳으로 가라앉겠습니다. 그 깊고 어두운 곳에서 무엇이 우리의 빛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빛을 위해 다시 연필을 깎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마음과 마음을 나누어주신 모든 분들께 이 영광을 드리고, 유충이 껍질을 벗듯 50대를 접으며, 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승화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제 작품이 이 상에 누가 된다면 이제껏 가꾸어 온 고성땅 '동화나무의 숲' 이랑 이제 새롭게 시작할 '열린아동문학'으로 우리나라 동화밭의 잘 삭은 거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30여 년 한결같이 아동문학의 새싹을 정성스럽게 보듬어 키우는 한국야쿠르트와 새싹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008년 11월 배익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