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도 주소가 있다
-민락동 754번지
동민이네 집 안마당, 강아지 집

강아지 주소가 있듯이
내 책상도 주소가 있다
-민락동 754
동민이 집, 동민이 방

내 책상 주소가 있듯이
내 몽당연필도 주소가 있다
-민락동 754
동민이 집, 동민이 방
동민이 책상 위
동민이 필통 속

신동민 내 주소는
민락동 754번지 앞에
주소가 더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

그 주소 앞에 주소가 더 있다
-지구별 대한민국
지구별 앞에도 주소가 더 있다
-은하계 안 태양계

맞았어
내 몽당연필 주소도
고쳐 써야겠네

키 작고 빡심* 세면
작은 고추라지
주먹까지 야물면 매운 고추라지

우리 반 덕수는
작은 고추다
미술도 음악도 못하는 공부 없다

다릿심도 좋아서
달리기도 날쌔다
씨름도 팔씨름도 우리 반 으뜸

누구든지 걔 앞에선
거드름을 못 피운다
작은 고추 덕수 진짜로 맵다

* 빡심 : 씨름을 할 때 잘 버티는 힘.

클 수 있는 것도 내 자유

키가 클 수 있는 것, 그것도 내 자유다
언덕 높이가 됐다가
앞산 높이가 되는 것도 내 자유다

그땐
딱, 소리 나게 앞산과 이마받이를 하고
키를 대어 보는 거지
“앞산아, 네 키랑 내 키가 같아졌다, 얘.”

그 말만 하고 내 키를
불쑥 구름 위로
솟구치게 하는 거다

구름이 내 허리쯤에 오면
아래로 가물가물, 앞산이
쳐다보면 부러워할걸

높이 난다는 비행기도
내 귀 옆으로 소릴 내며 다니고,
거인 나는 큰 바다를 몇 발짝에 건너지
이것도 내 자유다

산맥을, 야트막한 산맥을 타 넘고 넘어
많은 시간 아닌, 반 시간에
성큼성큼 지구 반 바퀴

신라 왕릉 풀 깎기

신라 왕릉은 작은 산이다
여름내 풀이 자라 장발이 된 왕릉
기계로 여럿이서 풀을 깎는다

왕릉 위 사람들이 개미만 하다
왕릉에서 꼬물꼬물 소인국 사람

“임금님! 풀 깎는 소리 시끄럽죠?”
금관을 쓰고 누운 임금님 대답,
“괜찮아, 시원하다. 아주 시원해.”

개미사람 수십 명이
하루 걸려서
장발 왕릉을 이발 시켰다

비눗방울 타고 태평양 건너기

비눗방울 연구가 방울 아저씨가
집 한 채 들어갈 만한 비눗방울을 연구했지
엄청난 크기, 꺼지지 않는 여기에다
열고 닫는 문을 두었지

비눗방울 안에 꽃밭을 두고
꽃씨도 심고
꽃이 핀 봄날

살림을 옮기고
식구가 모두 탔지
엄마 닭과 병아리와 강아지도 태웠지

“우린 떠나요, 먼 여행이죠. 안녕!”
마을 사람 우리도 손을 흔들었지

지붕 높이
산 높이
구름 높이로 비눗방울이 떴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린 쳐다보았지

며칠 뒤 방울 아저씨네가
태평양 건너 로스앤젤레스에 닿았대잖어
텔레비전에서 들었어

점 속에 내가 있다

아시아 땅에서
뾰족 나온
우리나라

거기에
점 하나 찍으면
우리 마을

점 속에 우리 집
점 속에 우리 식구
점 속에
내가 있다

뜨개질 할머니

지하철에 앉아 뜨개질하는 할머니
한 코 짜고
한 코 한 코, 또 한 코……

손자 주려고 짜나 보다
빨간색 벙어리장갑
다섯 살 개구쟁이가 있나 보다
장갑 크기가 그래

옆자리,
앞자리 사람이
할머니 손놀림을 본다

“아이코, 한 정거장 더 갈 뻔했네.”
할머닌 실 뭉치를 들고
바삐 내린다

동그라미표 쌓기

잘한 일은 동그라미표(○)다
잘못한 일은 가위표(×)다

오르막에 힘들어하는
수레가 있었지
밀어 주면 동그라미야,
못 본 체하면 가위표

힘이 드는가 봐, 하고
밀어 주었지
동그라미 하나

길에서 넘어진 아기
일으켜 주었지
동그라미 또 하나

학교서 돌아와
손과 발을 씻었지
이것도 동그라미표

동생과 놀아 주면
이것도 동그라미
엄마 일을 거들었지
이것도 동그라미

동그라미표 쌓기 참 쉽네

새싹 간질이기

돋아난
새싹을
손끝으로
톡,
건드려 봐

놀라서
옴싹
움츠리지

손끝으로
간질간질
간질여봐

옴싹
움츠리다
해해해, 웃지

웃을 수 있으니
클 수도 있어

잘 크는
새싹

종아리로 듣는다

귀뚜라미는 종아리에
귀가 있다지
귀를 막아선 안 돼

만일 내가 그렇다면,
긴바지는 입을 수 없지
종아리를
내노호
있어야 하거든

“어, 저건 매니 소리네.”
“저건 여치 소리네.”
종아리 귀로 듣지

내 노래도 종아리로 듣지
“귀뚤귀뚤 귀뚤귀뚤…….”

그래서 언제나
반바지만 입어야 돼

누가 와서 내 종아릴 툭, 치면
깜짝 놀라겠지
“얘, 귀 다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