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손님

함박눈이 내리는 날, 부엌새 아저씨가 눈을 맞으며 창하의 집으로 찾아온다. 아저씨는 늘 남루한 차림을 하고 나그네처럼 불쑥 찾아오는 손님이다. 창하는 그런 아저씨가 어느 손님보다 반갑고 좋다. 재미난 얘기도 해 주고, 사랑방에서 겸상해서 밥도 같이 먹고, 또 무언가 생각 깊은 얼굴을 볼 때마다 비밀스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반기는 또 한 사람, 바로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늘 똑같이 묻는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아저씨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한다.

“비석골에서 오는 길이에유.”

비석골? 두 사람이 말하는 비석골은 어디일까? 창하는 그것이 궁금했다.

비석골

사랑방에 등잔불을 밝힌 밤. 창하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비석골에도 눈이 많이 왔나요? 그곳이 어디인가요?”

아저씨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금적산 가는 어귀, 돌비석이 많은 곳이 바로 비석골이라고. 그곳 금적산은 창하도 잘 아는 마을 산이다.

옛날 노다지(금) 채광으로 크고 작은 굴이 많아 ‘금적산’이라 부른다. 창하는 비석골 사연을 캐묻듯이 들려 달라고 조른다. 눈 내리는 밤, 뒤뜰의 밍밍한 우물물 한 모금으로 마른입을 적신 아저씨는 마침내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 온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낮의 꿈

덕빙이(최덕봉-부엌새 아저씨)가 아홉 살이던 여름. 아버지 어머니가 도붓장사를 떠난 날이었다. 며칠 동안 만든 체, 어레미, 키를 잔뜩 메고 이고 새벽길을 떠났다. 하나뿐인 형(3학년)은 학교에 갔고, 덕빙이는 아홉 살 나이에도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아 혼자 놀고 있었다. 어른들이 들일을 하러 나간 마을은 빈 것처럼 조용했다. 덕빙이는 마을 서낭목인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나무는 또래들이 가지에 오르고 밑동에 뚫린 굴속에 들어가 숨고 하는 놀이터이다. 혼자 나무 주위를 기웃거리던 덕빙이는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소리쳤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른 때보다 비행기가 더 빠르고 소리도 요란했다. 졸졸 따라다니는 워리가 비행기를 보고 짖어 댔다.

“워리, 그만해.”

그때 마을 어귀가 소란스러워졌다. 들일 나갔던 어른들이 허둥대며 돌아오고 있었다.

“난리다, 난리가 났대요.”

덕빙이는 ‘큰대문집’ 머슴인 천도 아저씨에게 달려가 물었다.

“난리가 뭐예요?”.

“전쟁이 났대. 공산군이 쳐들어왔대.”.

마을 종루에 올라간 이장님이 종을 쳐 대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난리가 터졌어요. 빨리 피난을 떠나요.”.

마을은 정신없이 부산스러웠다. 덕빙이는 솔방골 고갯길로 달려갔다. 장삿길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 학교에 간 형이 돌아오는 길이다. 아버지 엄마, 형을 목이 터지게 불렀다. 아무 대답이 없다. 형은 난리가 난 걸 알고 있을까? 덕빙이는 집으로 달려가 천도 아저씨가 만들어 준 바람총을 바지춤에 찔러 넣고 큰대문집으로 달려갔다. 천도 아저씨가 마차에 피란 짐을 꾸리고 있었다. 큰 가방을 든 큰대문집 큰아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덕빙이 손을 잡았다. 그는 마을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한 사람으로 야학 선생님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덕빙아, 너 이 마을에 공산군이 들어오면 어떡할래?”

하고 물었다. 덕빙이는 말문이 막힌다. 공산군이 무엇인지? 또 얼마나 무서운지? 그래서 집을 떠나 피란을 가야 하는지? 선생님은 작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말했다.

“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 너는 아주 가까운 곳으로 피란을 가거라.”

그곳이 바로 은행나무이다. 어두컴컴하고 포근하고 아늑한 밑동의 굴속. 아무도 모르게 ‘숨는 곳’이다. 하루 사이에 많은 일을 겪은 덕빙이는 마음도 몸도 지쳐 깊은 잠에 빠지고, 복숭아 서리하다가 쫓기는 꿈을 꾸다가 잠이 깬다. 그때 그의 눈앞에 벌어진 풍경, 총을 든 낯선 얼굴들이었다.

워리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얼굴. 그 얼굴들은 이 세상이 아닌, 저기 까마득한 산 넘고 구름 너머 캄캄한 세상에서 온 듯 꿈밖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빨리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와 턱짓과 총짓(총을 든 팔)으로 말하고 명령했다. 그들 중, 덕빙이와 눈을 맞춘 얼굴은 험상궂은 표정에 자웅눈을 가진 자였다. 그는 따발총을 앞에총하고 언제라도 총을 쏘아 댈 자세였다. 마을에는 그들의 깃발이 나부끼고, 그들이 주인이 되었다. 덕빙이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집집의 곳간을 안내하고 집주인의 이름을 더듬더듬 대 주었다. 딴 세상으로 맞은 긴 하루. 덕빙이는 차츰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을 알게 되고, 별이 떨어지는 저 어느 곳에 있을 식구들을 그리워한다. 하루 이틀 사이의 일들이 마치 먼먼 옛일처럼 기억된다. 그런 덕빙이를 지켜 주는 것은 워리이다. 자웅눈은 무슨 생각인지 주위에서 졸졸 따라다니는 워리를 해치지 않았다. 무서움에 조금 익숙해진 덕빙이는

“도망쳐야 한다. 선생님이 이르던 곳으로.”

마침내 자웅눈이 조는 틈을 타 워리를 안고 탈출한다. 낯선 자들이 절대 찾아내지 못할 곳. 굴속에 잘못 들어온 작은 새도 끝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곳에 숨어든 것이다. 거기서 덕빙이는 동네의 동태를 살피며 피란생활을 한다. 제법 대범해진 덕빙이는 밤이면 마을 집으로 숨어들어 먹을 것을 가져오고 점령군의 동태를 살핀다. 그리고 며칠째 되는 야밤에 그를 찾아온 두 그림자가 나타난다. 바로 어딘가로 피란을 떠났던 천도 아저씨와 야학 선생님이다.

부엌새

덕빙이는 그동안의 일을 천도 아저씨와 선생님한테 들려준다.

“장하구나. 잘 견디었구나.”

선생님은 덕빙이를 칭찬하고, 어둠 속에서 더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너 금적산에 가 본 적 있니?”

언젠가 칡뿌리를 캐러 갔다가 굴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바로 그곳 큰 굴속에 마을 사람들이 피란 가 있는 것이다.

“그곳은 아주 안전한 피란처이지. 한 가지 양식이 없는 것 빼고는.”

그러면서 선생님은 식량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즉 덕빙에게 아주 중요한 일을 맡긴다. 덕빙이는 천도 아저씨와 선생님이 금적굴로 돌아간 후, 밤이 깊어지자 굴을 빠져나와 큰대문집으로 숨어든다. 쥐새끼처럼 광으로 들어가 곡물이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한다.

다음 날, 덕빙이는 짧은 시간에 정이 든 은행나무 굴을 떠난다.

“워리야, 이제 여기를 떠나야 해. 금적굴로 가는 거야. 거기 가면 맘대로 짖어도 될 거야. 그리고 지금부터는 절대 짖으면 안 돼. 알았지.”

바로 그때 무언가 후드득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찍찍 소리를 낸 것은 굴속에 들어온 작은 새이다. 바보 같은 새. 왜 하늘로 날지 않고 좁고 어두운 나무 굴속으로 들어왔을까? 덕빙이는 워리를 데리고 베틀바위가 있는 산으로 뛰었다. 소솟쩍, 소솟쩍. 새 울음소리를 내어 신호를 보냈다. 바로 베틀바위에서 선생님과 동네 청년들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청년들은 만일에 대비해서 모두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덕빙이는 살금살금 앞장서 길을 살펴 안내했다. 청년들은 무사히 큰대문집 광에서 곡식 가마니를 꺼내어 메고 두 명씩 짝을 지어 금적굴로 떠났다. 마지막 선생님과 덕빙이가 남았다. 그때 안산 쪽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급히 밤길을 뛰었다. 고갯길에서 선생님이 지친 덕빙이에게

“내 손을 잡아라.”

하고 말한다. 손을 잡으려던 덕빙이는 흠칫 놀란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워리가 없어요.”

정신없는 사이 워리를 놓치고 만 것이다. 워리를 꼭 찾아 데리고 가야 한다. 자웅눈이 며칠 만에 나타난 강아지를 보면 어젯밤 일어난 정황을 파악하고 무언가 낌새를 챌 것이다. 할 수 없이 선생님과 덕빙이는 은행나무 굴로 되돌아가 밤을 지내기로 한다. 안산 쪽에서 밤새 총소리와 불빛이 번쩍거렸다. 덕빙이는 워리가 꼭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아침이 되어 어렴풋이 워리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은행나무 밑을 내려다본 덕빙이는 깜짝 놀랐다. 워리가 와 있었다. 재빨리 나무에서 내려온 덕빙이는 워리를 품에 안았다.

“워리야, 그런데 짖으면 안 돼.”

그때 갑자기 거친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짝짝이 눈이었다.

금적산

탕! 총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자웅눈이 짝눈을 실룩거리며 총을 마구 쏘아 댔다. 은행잎이 우수수 흩날렸다. 덕빙이는 워리를 안고 후들후들 떨면서도 아직 은행나무 굴에 있는 선생님을 생각했다.

“어서 앞장서라. 어젯밤 곡식을 어디로 가져갔니? 시간 없다. 어서 앞장서.”

자웅눈이 윽박질렀다. 덕빙이는 슬쩍 은행나무를 올려다보고 앞장서 걸었다. 반대 방향인 안산 쪽으로 걸었다.

“야, 이 새끼 동무. 날 놀리냐. 그쪽은 아냐. 똑바로 가지 못해.”

덕빙이는 자신에게 소리쳤다. ‘금적굴은 안 돼. 절대 안 돼.’. 머뭇거리는 덕빙에게 겁을 주려고 또 따발총을 긁어 댔다. 덕빙이가 모른다고 도리질하며 울음을 터뜨리자 자웅눈이 워리를 홱 빼앗아 총을 워리 머리에 겨누었다.

“안 돼유. 우리 워리 죽이지 말아유.”

덕빙이 얼굴은 눈물과 공포로 범벅이 되었다.

“그래. 착하지. 어서 앞장서거라.”

자웅눈이 워리를 건네주었다. 덕빙이는 비틀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언젠가 칡뿌리 캐러 가 보았던 금적산 가는 고갯길에 다다랐다.

“어디야?”

자웅눈이 총구로 가슴을 찔렀다. 덕빙이는 아랫니와 윗니를 부딪치며 덜덜 떨었다. “어디야?”

덕빙이는 눈을 꼭 감고 손을 들어 산을 가리켰다. 자웅눈은 덕빙이의 표정에서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읽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때 워리가 짖어 댔다.

“이놈의 똥강아지가.”

자웅눈이 워리를 나꿔채 빼앗았다.

“넌 빨리 네 갈 데로 가거라.”

자웅눈이 따라온 무리들에게 금적산을 가리켰다. 앞에총을 한 무리들이 그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자웅눈은 뛰어가면서 워리와 실랑이를 벌였다. 워리가 자웅눈 품을 빠져나와 덕빙에게 달려왔다. 탕, 탕! 자웅눈이 총을 쏘아 댔다. 워리는 지그재그로 달려와 덕빙이 품에 안겼다. 더빙이는 워리를 안고 마을 쪽으로 뛰었다. 굴속에 있는 선생님을 생각하며. 고갯길에 이르렀을 때, 금적산 쪽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덕빙이는 땀에 젖은 러닝셔츠를 벗어 던졌다. 허리춤에 찔러넣고, 다니던 바람총도 던져 버렸다. 신발도 벗어 던지고 두 주먹을 쥐고 뛰었다. 워리와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맹렬히 달렸다.

눈꽃 핀 아침

이야기를 마친 아저씨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버지, 어머니, 형은 어떻게 되셨어요?”

하고 마음속으로 물어 보았다. 등잔불의 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기름이 다한 것이다. 창하는 아저씨와 나란히 누웠다. 지나간 세월 속에서 덕빙이 소년과 야학 선생님이 은행나무 굴속에서 나란히 누워 잤듯이 그렇게 둘은 나란히 누웠다. 바람총을 만들어 주던 천도 아저씨, 바로 그 아저씨가 누워 자던 큰대문집 사랑방이다. 그날 은행나무 굴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선생님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눈을 맞고 찾아오는 부엌새 아저씨, 바로 워리를 껴안고 도망치던 덕빙이 소년을 맞아들이며 지난날의 아픔을 삭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이른 아침. 세상은 하얀 눈 천지이다. 동구 밖 은행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는 벌거숭이로 꿋꿋하게 서 있다. 아저씨는 할아버지에게 하직 인사를 한다.

“어르신, 저 가유.”

“언제 올 텐가?”

“글쎄유.”라는 말을 남기고, 털모자를 눌러 쓰고 길을 떠난다. 떠나는 길에 비석골에 이르러 절을 두 번 올리고, 무릎을 꿇는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아니 눈물이 마를 수가 없다. 도붓장사 나간 아버지 어머니, 학교에 간 형은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세월이 십 년씩 몇 바퀴를 돌았는데도 끝내 소식이 없다. 이 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람은 옛사람이 옛날 모습 그대로 돌아와 주기를 고대 기다린다. 부엌새? 세상에 그런 새는 없지만, 그렇게 이름 지어 부르는 새는 있다. 바로 ‘부엌새 아저씨’이다. 푸른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굴속으로 날아와 이리저리 부딪혀 죽은 새. 이 책의 주인공 덕빙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를 모르는 불쌍한 새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