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새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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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일출 (신작동시)
글쓴이	정민기	2016/12/10

일출

정민기(책벌레)

수평선에서
애드벌룬이 떠오른다
저걸 잡아탔어야 했는데

학교 가느라
학원 가느라
공부하느라
숙제하느라
놓치고 말았다

내일 아침엔
꼭 애드벌룬에
올라타야지

―지은 책으로 동시집 《약속 반지》, 시집 《낮달》 등.

정민기	새로운 동시집 『약속 반지』를 내게 되었습니다. 해학이 콩고물처럼 묻어나는 동시를 모았습니다. ============ 정민기(책벌레) 1987년 전남 고흥군 금산면에서 태어났다. 2008년 '무진주문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8회 대한민국디지털문학대상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동시집 『우주인』(2016, 부크크) 등과 시집 『낮달』(2016, 부크크) 등이 있다. 현재 우주센터가 있는 전남 고흥군 봉래면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약속 반지 정민기 동시집 시인의 말 어느덧 가을이 가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의 곁에 조금이나마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이렇게 또다시 저의 마음을 전합니다. 꿈과 희망 잃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12월 책벌레 정민기 ======================= 차례 시인의 말 엄마표 볶음밥·9 별에 다녀온 아이·10 팥알·12 모과·13 수세미 따러 가는 엄마에게·15 별꽃이야·16 우리 아빠를 찾습니다·17 민들레 꽃대 위에·19 폭탄먼지벌레·20 파도·21 코 고는 소리·22 이모저모·23 배추·24 민들레 추임새·25 섬진강 기차 여행·27 과자 사러 가는 동전·29 아이와 어른의 차이·31 고래와 분수·32 엄마에게 매달리기·33 갑오징어·34 말이 짧다?·35 동물원에서·36 두루마리 화장지·37 증기기관차·38 조개의 발·40 다락방에 사는 도깨비·41 꿈·43 몽당연필·45 꼬꼬댁·47 겨울 밀가루 사탕 먹기·48 털실 뭉치·49 포장마차·50 초승달·51 보름달·52 명찰·53 아픈 엄마·54 따발총 감탄사·55 도깨비바늘·56 언니가 상 받은 날·57 할머니와 옆집 아저씨·58 초승달 2·60 노을·61 감나무·62 엿장수 맘대로·63 브로치·65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66 지하철·67 식빵·68 뭉게구름·69 약속 반지·70 양파니까요·71 귤 꽃·72 턱걸이·73 꽃밭 운동장·74 깍두기가 인사하는 방법·75 도토리·76 엄마표 볶음밥 엄마가 해주신 김치볶음밥이 글쎄, 내 뱃속으로 들어왔지 뭐야 내보내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 김치 싫어하는 동생도 볶음밥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강시처럼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콩콩, 뛰어 동생이 향한 곳은 엄마가 해놓은 김치볶음밥이 있는 주방 식탁이야 맛있게 먹는 동생 뒤로 엄마가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어 동생이 또 먹고 싶다고 하자 엄마가 이번에는 새로운 야채 볶음밥을 하려고 해, 케첩도 넣어서 말이야 동생을 위해서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맛있는 볶음밥을 해주시려고 해 ------------------------------------------------ 별에 다녀온 아이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한밤중에 밖으로 나간 영건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변해 용감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어린 왕자처럼 히죽히죽 웃고 있다 자, 내가 별에 다녀왔다 비 온 뒤라서 웅덩이 고인 물에 밤하늘별이 내려왔겠지 그래서 식은 죽 먹기로 별에 다녀온 거다 하지만 식은 죽은 맛이 없는 법 그날 밤, 아이는 엄마의 빗자루를 빼앗아 해리포터가 되어 별나라를 향해 날았다 ---------------------------------------------- 팥알 싱크대 밑 찬장에서 눈이 흐린 날 같은 할머니가 내 손에 쥐여 준 팥알 자세히 살펴보니 팥알이 아니라 바퀴벌레 알이었다 하마터면 할머니가 팥죽 끓일 때 같이 넣을 뻔했다 -------------------------------------- 모과 나는 모과에요 모가 나지 않았지요 엄마는 자꾸 고릴라처럼 머리를 쥐어박지만 나는 단단해서 오히려 손이 아플 거예요 나는 향기도 좋지요 그래서 늘 여자친구들이 뒤를 따라다녀요 결국 목적지는 집으로 가는 것이지만요 나를 잘못 건들면 지독해도 너무 지독한 신맛을 느끼게 돼요 근데 학교에서 돌아오니 미리 현관 앞에서 얌전한 고양이처럼 기다리고 있는 엄마, 책가방만 고리 던지기처럼 휙, 던져놓고 잽싸게 줄행랑을 치려는데 잡히고 말았지요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다가 결국 숙제하고 놀러 갔어요 나는 모과에요 모가 나지 않았지만 엄마는 자꾸 모가 난 것처럼 취급해요, 날 보고 뭐라 하는 줄 아세요? 나 참, 라바래요 모과에 눈 코 입 붙었다고 라바래요, 까마중으로 더듬이도 붙이래요 나는 막혀도 단단히 기가 막혔어요 누가 내 기 좀 뚫어줘요 하지만 변기 뚫는 뚫어뻥으로는 절대, 절대로 안 돼요 벌써 엄마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뚫어뻥을 가지고 왔네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 수세미 따러 가는 엄마에게 엄마, 조심하세요 도깨비가 수세미 넝쿨 아래서 낮잠 자고 있을 때 얼른 따 오세요 도깨비가 자기 방망이 따 간다고 아마 쫓아올 거예요 그럴 때는 제가 주방에 있는 수세미를 도깨비에게 줄 거예요 방망이 수세미보다 더 좋은 설거지 수세미다 -------------------------------------------------- 별꽃이야 청소 시간에 밖에서 놀다가 종례 시간이 다 돼서야 교실로 들어온 너에게 선생님께서는 별꼴이야 하셨지 책가방 거실에 던져놓고 놀러 나갔다 들어오는 너에게 엄마는 별꼴이야 하셨지 하지만 나한테 너는 별꽃이야 밤하늘에 수놓은 반짝반짝 아름다운 별꽃이야 --------------------------------- 우리 아빠를 찾습니다 우리 아빠를 찾습니다 네 아빠가 누군데? 거, 가만 좀 있어 봐 두 눈이 톡, 튀어나왔고요 네 아빠 혹시 개구리니? 거, 가만 좀 있어 보래도 밤늦게 가로등이나 전봇대에 실례를 하기도 하고 엄마 앞에서 엉덩이를 살랑 흔들기도 해요 네 아빠 혹시 강아지니? 아 거 참, 가만 좀 있어 봐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기도 해요 네 아빠 혹시 노래방에 잘 가니? 아 진짜, 가만 좀 있어 보라고 어쩌다가 필름이 끊기기도 합니다 아하! 이제 알았다, 네 아빠 카메라맨이구나? 이거 참, 미쳐버리겠네 그럼 네 아빠가 뭐 하는 분이신데? 그래 우리 아빠 술주정뱅이다 뭐 보태준 거 있냐? ------------------------------------- 민들레 꽃대 위에 민들레 꽃대 위에 노란 나비 앉았다 꽃이 피었다 민들레 꽃대 위에 하얀 나비 앉았다 씨앗이 맺혔다 ------------------------------------ 폭탄먼지벌레 폭탄 같은 독가스를 내뿜고 먼지를 일으키며 도망가는 벌레 방귀벌레야 ---------------------------------- 파도 엄마 몰래 바닷가에 놀러 나왔는데 어떻게 알고 벌써 엄마가 저 멀리서 하얗게 질려서 쫓아온다 ----------------------------------- 코 고는 소리 드르렁드르렁 아빠의 코 고는 소리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 모처럼 일 안 하는 날 거실에서 낮잠 자는데 들어! 들어! 꿈속에서도 일하고 계시나 보다 -------------------------------------- 이모저모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오시는 이모를 길에서 만났다 반가움에 달려가며 "이모"하는데 바리바리 싸 들고 오신 이모가 "이모고 저모고 이것 좀 들어라 에고, 무겁다" -------------------------------- 배추 땅에 척, 엉덩이를 박고 앉아 있는 배추 날 보고 반갑다고 안아줄 것 같은 모습 다가가 안아주려다가 혹시 우리 엄마 마음처럼 엉큼한 데가 있나 살펴보았더니 자세히 보았더니 고놈, 배추벌레 숨기고 있다 -------------------------------------------- 민들레 추임새 아, 나가 글씨 다소곳이 들길에 앉아있는디 얼씨구! 누구네 빨랫줄을 잡다가 왔는지 좋다! 아, 퀴퀴한 빤쓰가 나 얼굴에 찰싹, 달라 붙어버린 거시여 잘한다! 잘하긴, 뭐가 잘혀? 그 빤쓰가 뭐였냐면 엉망진창 나비여 그렇지! 그렇지는 또 뭐가 그렇지여? 나 얼굴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디 니가 좀 떨어뜨려 줄텨? 얼씨구! 지랄하고 자빠졌네 나가 왜? 그럼 나 혼자 워쩌라고? 저런! 저런은 뭐가 또 저런이여? 워메, 나가 미쳐불고 환장허겄네 흥! ---------------------------------- 섬진강 기차 여행 전라선을 타고 기차 여행을 해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사람을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고 노래를 불러요 창밖으로 귀 기울이니 귀가 열려요 창밖 풍경을 눈으로 바라보니 눈이 열려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가 따뜻한 차를 끓여요 ------------------------------- 과자 사러 가는 동전 옆집 할머니가 귀엽다고 준 동전 몇 개 들고 슈퍼에 가는 해정이 동전 꼭 쥐고 걸어가다가 걸어가다가 그만 동전을 땅에 떨어뜨렸다 슈퍼에 먼저 가겠다고 데구루루 굴러가는 동전 거기 안 서? 너 혼자 과자 사 먹으려고 그러니? 내 과자 다 먹기만 해 봐 우이씨 -------------------------------- 아이와 어른의 차이 배를 타면 버스를 타면 비행기를 타면 기차를 타면 아빠는 무조건 통로 쪽에 앉는 걸 되게 좋아한다 나는 무조건 창가 쪽에 앉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그래야 창밖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보지 저것 봐라 아빠는 통로 쪽에 앉아서 별나라 여행 중이다 ------------------------------ 고래와 분수 고래가 분수를 보고 ―어? 너도 고래? 분수가 고래를 보고 ―어? 너도 분수? -------------------------------- 엄마에게 매달리기 어렵게 생각하지 마 철봉에 매달리는 것처럼 팔힘만 세면 돼 도깨비를 만나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빠딱 차리면 돼 그렇다고 밥상까지 차리지는 말고 너 지금 졸고 있지 정신 빠딱 차리라니까 -------------------------------------- 갑오징어 젓가락으로 콕, 콕, 찍어 봐라 그래 봤자 나 단단한 갑옷 입었어 ------------------------------ 말이 짧다? 소와 염소가 만났다 염소가 먼저 '안녕' 인사했다 그러자 소가 말이 짧다? '하세요'는 왜 안 붙여? 그 말에 염소가 대꾸한다 너는 수염도 없으면서 벌써 어른 흉내 내냐? ---------------------------- 동물원에서 엄마 사자 안 사 ----------------------------- 두루마리 화장지 1 화장지를 쓰려다가 떨어뜨렸다 바닥에 풀어진 화이트 카펫 2 화내는 엄마를 향해 혀 길게 내밀었다 ---------------------------- 증기기관차 시골 할머니 집은 증기기관차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뿌우~ 뿌우~ 방귀 기적이 울리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른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해서 기차 안에 누워있고 할머니가 홀로 기차를 움직인다 ―다음 역은 황혼기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 조개의 발 조개가 메롱 한다고 손가락질하지 마! 엄마 몰래 양말도 신지 않고 놀러 나가고 싶어서 발을 내민 거니까 그렇다고 발을 잡아당기지는 마! 놀라서 다시 쏘옥 들어가고 말 거니까 -------------------------------- 다락방에 사는 도깨비 할머니 집 다락방에는 도깨비가 산대요 그래서 제가 올 때마다 다락방에는 올라가지 말래요 저는 그러면 그럴수록 호기심이 도깨비 뿔처럼 솟아나요 눈치를 살피다가 할머니가 텃밭에 나가자 얼른 다락방에 올라갔어요 애걔, 도깨비는커녕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아요 그러면 그렇지, 이건 홍시고 이건 건빵이고 이것은 곶감 이것은 감말랭이 이건 고구마 말린 빼때기 알고 보니 할머니 집 다락방에는 맛있는 게 가득한 보물 창고였어요 혼자만 먹으려고 감춰놓았던 건가 봐요 치, 어림도 없는 소리 할머니 몰래 곶감 하나 먹고 홍시 하나 먹고 건빵 한 봉지 주머니에 넣고 또다시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하품이 나왔어요 할머니가 오기 전에 얼른 내려가야 하는데 아이참, 빼때기를 오물오물 껌처럼 씹다가 나도 모르게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지 뭐예요 천천히 다락방으로 올라오는 할머니, 잠들어 있는 날 보고 드디어 도깨비를 잡았다고 마귀할멈처럼 까르르 웃고 있어요 ------------------------------------- 꿈 내 꿈은 까만 도화지처럼 깜깜하다가도 별이 떠서 반짝이고 달이 떠서 환할 것이다 또 내 꿈은 까만 도화지 너머 우주를 품을 것이다 암탉이 계란을 품으면 병아리가 나오는데 내가 우주를 품으면 무엇이 나올까? 선생님도 나오고 발명가도 나오고 과학자도 나오고 대통령도 나오겠지? 외계인이 나오기만 해봐라 중국 최고의 축구선수 펑차우를 불러서 다시 우주로 차올릴 테니까 ---------------------------------- 몽당연필 키가 작아 몽당연필 뭐 어때? 키가 작아도 볼펜 대에 끼워서 쓰면 좋은데, 키 작은 내 별명 몽당연필 뭐 어때? 키는 작아도 아빠와 엄마 사이에 끼어서 살면 편한데, 필요하면 둘 중에 하나 빌려줄 수도 있어 ------------------------------------ 꼬꼬댁 우리 집 닭장에 있는 닭들은 엄마를 보고 꼬꼬댁~ 꼬꼬댁~ 이라고 한다 엄마는 안동에서 시집와서 안동댁인데 닭들이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언제 한번 제대로 알려줘야겠다 그러면 엄마를 보고 안동댁~ 안동댁~ 라고 할 것이다 ----------------------------------------- 겨울 밀가루 사탕 먹기 겨울에 산타할아버지 수염 같은 눈이 내려 지구가 밀가루 속 사탕을 입으로 먹을 때 하늘이 뒤에서 밀가루에 박아버려서 지구 얼굴이 하얗게 변했어 지구를 위해서 아이들이 밀가루 반죽을 똘똘 뭉쳐서 하늘을 향해 던져 눈싸움이 벌어진 거야 ---------------------------------------- 털실 뭉치 추워지는 날 데구루루 굴러나오는 털실 뭉치 길게 늘어지는 실 한 오라기 엄마 마음의 도화선 불을 붙이면 사랑이 터지겠지? 옆집, 앞집 뒷집에서 한겨울 들려오는 퍼엉! 퍼벙! 퍼버벙! ------------------------------------ 포장마차 포장마차는 예쁜 포장지로 포장되어서 누구한테 배달될까? 제발, 내 짝꿍 그 뚱뚱이한테는 배달되지 말아야 하는데…… 여자친구랑 같이 떡볶이랑 어묵 사 먹는 모습을 보면 날 잡아먹으려고 할 거다 ---------------------------------- 초승달 활시위가 당겨졌다 큐피드의 화살 내가 먼저 짝꿍에게 날리려고 했는데 아이고, 한발 늦었다 --------------------------------- 보름달 캄캄한 밤하늘 한가운데 뚜껑 열린 맨홀이 있다 예쁜 짝꿍이 걸어가다가 빠지면 큰일이니까 커다란 우리 아빠 엉덩이를 앉혀야겠다 아빠, 미안한데 말이야 조금만 기다려줘 거기서 똥 싸고 싶으면 마음껏 싸도 좋아 그렇지만 움직이지 말고 잠시만 그대로 있어 줘 엄마는 아빠 심심하니까 붕어빵 사서 입에 넣어 줘 난 밤하늘 올려다보고 있을게 ------------------------------------ 명찰 명찰을 가슴에 달고 올 때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야, 김민기" 이름을 불러주시더니 다음 날 아침에 늦잠 자서 깜빡 잊고 명찰을 달지 않았더니 "야, 명찰" 하루아침에 내 이름을 까먹으셨나? --------------------------------- 아픈 엄마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는 엄마 맛있는 거 있으면 날 먼저 챙겨주었던 착한 우리 엄마 이제는 내가 맛있는 거 있으면 엄마를 챙긴다 아픈 엄마를 보면 착하지 않았던 내가 어느새 착해진다 ---------------------------------- 따발총 감탄사 고양이가 생선가게 앞에서 이야! 이야! 뭘 보았는지 감탄사가 따발총처럼 발사된다 할머니 오는 날 동구 밖까지 나가서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다 멀리서 할머니가 보이자 우와! 우와! 용돈이 더 좋아서 감탄사가 따발총처럼 두두두두 발사된다 혹시 고양이도 좋아하는 생선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한 걸까? --------------------------------- 도깨비바늘 짝꿍이 길가 풀숲에 몰래 숨어 있다가 달라붙어서 손가락으로 콕, 콕, 옆구리 찌르면서 자기 좋아해달라고 한다 며칠은 내 옆에서 이렇게 귀찮게 굴 텐데 정말 걱정이다 --------------------------------- 언니가 상 받은 날 언니가 학교에서 상을 받았다고 종잇장을 내밀며 엄마 앞에서 자랑한다 짠하게 보던 엄마가 나를 주방으로 부른다 너는 엄마가 주는 밥상이라도 받아라 ---------------------------------- 할머니와 옆집 아저씨 옆집 아저씨가 와서 "밥 무쓰요?" 하자 할머니가 "와, 무밥 무꼬 잡소?" 그러자 아저씨가 "아니요, 난 무꼬 왔는디라 할매 말이요, 할매 밥 무쓰요?" 할머니는 또 "나는 밥에 무 잘 안 넣는디라?" 아저씨는 "아따, 할매 그 말이 아니고라 할매 밥 잡샀는가요?" 그제야 할머니는 "나 밥 진즉 묵었재라" ----------------------------------- 초승달 2 하늘도 웃는구나 초승달로 웃는구나 ---------------------------------- 노을 높은 감나무에 까치밥 하나 철봉에 매달리듯 달려 있더니 깍깍, 까치가 다녀갔나 붉게 터졌다 ----------------------------- 감나무 옆집 할머니가 담장 너머 우리 집으로 손을 뻗었다 "감나무에 홍시가 맛있게 달려서잉" 옆집 할머니 오른팔 나뭇가지 끝 손에 홍시 달렸다 내가 얼른 따서 우리 할머니 갖다 주었다 ------------------------------------ 엿장수 맘대로 엿장수 아저씨가 안 보인다 찰캉찰캉 가위질 소리 안 들린다 온 세상이 물드는 어느 가을날 바닷가에 갔더니 엿장수 아저씨들 뻘밭에서 달리기하고 있다 아 며칠 엿장수 아저씨 마라톤 대회라도 열렸나 보다 옆에서 응원하고 있었더니 한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 찰캉찰캉 가위질한다 내가 아는 그 엿장수 아저씨인가! 아저씨 여긴 웬일이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엿장수 맘이야 그러더니 뻘밭을 달려가면서 찰캉찰캉, 엿 사시오! 엿가락처럼 허리 휘어지기 싫으면 빨랑빨랑 엿 사시오! 아 며칠 엿장수 아저씨들 바닷가 뻘밭으로 엿 팔러 나왔구나 ----------------------------- 브로치 바람을 붙잡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졸라대더니 오늘 바람이 풀꽃 잎에 나비 달았다 -----------------------------------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 야외 수업할 때 환희와 환별이가 서로 잘났다고 싸우자 선생님이 뒷짐 지고 가만히 내려다본다 떠돌이 강아지가 한참 서 있는 선생님을 전봇대로 알았나 보다 한쪽 다리 들고 뒤에서 오줌 쌌다! 선생님께서 놀라서 친구들을 돌아보며, 너희들, 저 강아지 안 보고 뭐 했어? ―그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 지하철 뱃속에 사람 넣은 빵빵한 두더지가 땅을 파 들어간다 겁 없는 사람들 두더지 옆구리 열리자 우르르 들어간다 사람을 태우고 지하철이 두더지처럼 덜컹덜컹 달린다 ---------------------------- 식빵 커다란 식빵 하나 문도 없고 창문도 없고 집 한 채 덩그러니 ------------------------------ 뭉게구름 산타할아버지 또 덜렁대다가 수염 떨어뜨리고 갔다 지나가던 바람 수염을 주워 산타할아버지 찾으러 간다 -------------------------------- 약속 반지 짝꿍과 싸운 벌로 선생님께서 내게 새끼손가락 고리 걸어 약속 반지 끼워주라고 하셨지 서로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있으니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새끼손가락을 얼른 뺐지 약속 반지 꼭꼭 걸고 있어야 했는데…… 해와 달도 햇무리로 달무리로 약속 반지 걸기도 하지 ------------------------------- 양파니까요 너는 왜 매일 그 모양 그 꼴이니? 형 좀 보고 배워라 벗겨도 벗겨도 한결같은 양파니까요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양파를 벗기면서 눈물 훔치는 걸 ------------------------------ 귤 꽃 귤껍질을 벗긴다 한 송이 꽃봉오리 열리는 순간 미니 호박 떡 하니 앉아 있다 --------------------------------- 턱걸이 둥근 해가 수평선에 걸렸다 턱걸이한다 ----------------------------------- 꽃밭 운동장 꽃밭은 운동장 나비들의 운동장 피티체조 시이이이작! 꽃들이 주는 향기 구령을 받자 핫둘 핫둘 ---------------------------------------- 깍두기가 인사하는 방법 아이가 엄마한테 문제를 낸다 "엄마, 깍두기가 어떻게 인사하는지 알아?" 엉뚱한 질문에 엄마는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에이, 그것도 몰라?" 아이는 조금 실망한 듯 보인다 깍두기가 인사하는 방법은 바로바로 ―깍둣하게 ------------------------------------- 도토리 숲속 마을이 있어요 다람쥐가 살고 청설모가 살아요 마을 이름은 도토리예요 뻐꾹리에서 뻐꾸기가 놀러 오고 꿀꿀리에서 멧돼지가 놀러 오고 짹짹리에서 참새가 놀러 와요 숲속에서 푸른 잔치가 열려요 꽃도 피고 나비도 날아왔어요 휘파람새가 휘~ 휘휘~ 휘~ 휘휘~ 울어요 그 소리는 꼭 "따라와~ 따라와~ 왜 안 와~" 라고 하는 것 같아요	201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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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기 (신작동시)	정민기	2016/12/12

도토리 (신작동시)

정민기

2016/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