샥샥이는 연두실에 사는 하얀 뱀이다. 날씬하고 담도 스르르 잘 넘고 춤도 잘 추는 자신에게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 주민들이 바삐 어디론가 몰려간다. 궁금해진 샥샥이도 따라가 보니 달구지가 도착한 곳은 무지개시의 빤짝빤짝 명품 신발 할인 매장이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려는 샥샥이를 안내원이 가로막는다. 발이 없으니 고객이 아니라는 거다. 친구들 덕분에 입장은 했지만 그때부터 샥샥이 눈에는 다른 이의 발만 보인다.

자신만 발이 없다는 자각에 상심한 샥샥이는 홈통 구멍으로 들어가 땅굴 속에 숨는다. 그러나 밤중에 몰래 신발창고로 가서 구경하던 샥샥이는, 자신이 정말 신발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다. 발이 없는 것과 신발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샥샥이는 밤마다 신발을 감상하고 관찰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야근하던 창고 직원들이 하얀 유령 얘기를 나눈다. 자신에 대한 괴담임을 알고 샥샥이는 웃음이 나왔으나, 다음 얘기가 이상했다. 평생 감옥에 갇혀 신발만 만들다 죽었으니 억울한 게 당연하다는 거였다. 빤짝빤짝 신발에 뭔가 비밀이 있음을 알고, 샥샥이는 새 신발을 싣고 온 트럭에 잠입한다. 차가 도착한 곳은 평범해 보이는 마을이었는데 사방에 <신발 신고 다니시오> 팻말이 붙어 있다. 마을을 둘러보니 지네 노래기 돈벌레 등 온 동네 주민이 신발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들은 나가서 놀고 싶어 하지만, 신발도 안 신고 어딜 다니느냐고 어른들은 혼낸다. 기술을 배워 신발 한 짝이라도 더 사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을 보고, 샥샥이는 이곳이 울타리 없는 감옥 임을 알게 된다.

샥샥이는 <신발 신고 다니시오> 팻말을 뽑아보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림책 화가 지망생 까칠이와 의기투합하여 <신발 벗고 다니시오>로 한 글자를 고친다. 마을 아이들이 기뻐하며 맨발로 뛰어놀자, 밤에도 번쩍거리는 <신발 신고 다니시오> 전광판이 사방에 세워진다. 샥샥이와 까칠이는 아이들 발에 천연 물감으로 신발을 그려준다. 불편한 명품 신발보다 자유롭고 개성을 살린 공짜 패션 신발은 선풍적 인기를 끈다.

시간이 흐르자 동네는 많은 이들이 찾는 <원조 패션 신발 마을>로 바뀌고, 샥샥이는 연두실로 돌아와 예전처럼 지낸다. 언젠가 또 모험을 떠나겠지만, 지금은 여기에 있고 샥샥이는 충분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