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청소년을 위한 기도이며 청소년들의 은밀한 고백

이 계절의 화제의 책은 단연 도서출판 '답게'가 펴낸 청소년 문고 9권이다. 청소년 소설 8권과 시집. 주로 동화를 써왔던 동화작가들이 선보이는 8인 8색의 청소년 소설은 동화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작가의 장점들을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집이다. 청소년 시집을 처음 선보이는 정두리 시인의 시편은 신선하고 깊이가 느껴진다.

역사의식과 예민한 현실인식으로 꾸준히 독자층을 넓혀온 이규희는 '두 소녀의 용기'를 통해 선생님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스쿨 미투 주제를 작가 특유의 미적 감각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스쿨 미투만이 아니라 다양한 미술 이야기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 주는 작품집이다.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소재를 작가는 중등학교에 근무했던 경험과 옛 친구의 경험들을 끌어 모아 오늘의 이야기로 선명하게 재조명하고 있다.

원유순은 ‘우리들의 이정표’에서 시골에 사는 조손 가정 청소년을 둘러 싼 가족들의 갈등을 입체감있게 보여준다. 초계탕집을 운영하며 수재 아들을 뒷바라지 하지만 그 아들은 정신 이상자가 되어 사방을 떠도는데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역사가 반전처럼 다가오며 이야기는 폭을 넓혀 나간다. 가족이지만 돈 앞에서 인간적인 추악함을 드러내는 어른들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낯선 동행(이경순)‘에선 개성이 다른 남자 아이 셋을 묶어 흥미로운 여행기를 창작해냈다. 형편이 다른 세 아이들의 좌우충돌도 흥미롭지만 작가의 인문학적 지혜들을 작품 곳곳에 배치하여 작품의 깊은 맛을 더하게 하고 있다. 청소년이지만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세 아이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닮은 듯 다른 세 아이의 개성을 잘 살려낸 작품집.

자꾸만 눈물이 나(백승자)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빈틈없이 빛나는 그림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아빠와 히말리아 산맥 아래 라다크를 여행 하며 자신을 옭매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따뜻하고 정겨움으로 상처를 가려놓은 가족들의 관계까지 이끌어내는 만만찮은 내공을 보여주고 있다. 백승자 작가의 장기가 무엇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어떠할 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작품집이라 여겨진다.

최은순은 ‘어둔리 엄마’의 다양한 등장인물들 속에서 상처 받은 10대 소녀가 어떻게 역경을 헤쳐나가는지를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술집에서 일했었다는 과거에 발목 잡힌 엄마와 우유부단한 아빠, 그런 엄마에게 혹독하게 구박하는 할머니 틈에서 상처로 자란 주인공은 외할머니의 따뜻함을 통해 치유해 나가지만 가정이 파탄되며 드러나는 친할머니의 천원에 얽힌 사연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인간 누구에게나 숨겨져 있는 비밀은 때로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겐 목숨 같은 것이다.

‘위험한 소년(선안나)’은 조현병을 앓는 형을 바라보는 동생 인하의 이야기이다. 수재로 소문나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이 조현병 환자로 드러나며 인하네는 서서히 그늘로 잠겨드는 데 작가는 조현병이 무엇이며, 치료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주인공 인하와 그 주변 인물들을 내세워 설득력있게 펼쳐나간다. 형이 왜 조현병에 걸렸는지를 암시하는 엄마와의 격한 대립은 우리 청소년들이 얼마나 힘겹게 공부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채우 효진(유효진)은 ‘하버 브릿지’에서 가장 핫한 요즘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작품 활동이 뜸했던 이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이 작품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거침없는 욕설까지 끌어 들인 이 작품집은 뉴질랜드 유학을 통해 해외 유학생들의 현실을 하나 하나 생생하게 보여 준다. 감사 할머니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잘 살려내어 시종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어린 유학생들이 문제점을 제시한 청소년 유학 보고서이다.

송재찬은 고아가 되어버린 소년이 드럼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가장 소중한 비밀을 밝혀내는 ‘비밀에 갇힌 영혼‘을 내 놓았다.

8권의 작품들은 약속한 듯이 가족이란 큰 그림을 밑에 깔고 있고 허를 찌르는 반전들이 숨어 있어 장편다운 맛을 더해 준다.

답게 청소년 문고의 9권은 소설이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시이다. 정두리 청소년시집 '질투의 힘'은 62편의 시에 62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이 청소년 시집은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기도이며 축원이다. 좀처럼 들여다 볼 수 없는 그들의 마음을 시인에게만 드러낸 청소년들의 간절한 고백이기도하다. 청소년 소설처럼 시에 나타난 아이들의 삶은 지쳐있고 날이 서있으나 짙은 그늘 속에서도 강인하게 살아 꿈틀대는 청소년 특유의 희망이 시편 전체에 깔려 있다.

답계의 청소년 문고는 계속 출간된다고 한다. 또 어떤 작가가 어떤 주제와 소재를 들고 독자 앞에 나타날 지 기대가 크다. (글:송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