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각으로 새롭게 빚어낸 작품

박혜선 동시집 『바람의 사춘기』 사계절(2021. 2. 1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작인 박혜선 동시집은 시인의 감성과 시적 영감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낸 몇 권의 동시집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생각의 이미지들이 작품 전반에 깔려있다. 어떻게 보면 좀 특이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바람의 사춘기」란 동시집 제목부터가 동심의 테두리에 끌어들인 것도 대단한 일이다. 「돼지의 궁금증」, 「습관」, 「태양이 진다」 등 몇몇 작품의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생각만으로 붙여지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보고 몇 번이나 곱씹지 않으면 이런 제목을 붙이기가 힘이 든다. 동시집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을 봐도 얼마나 고뇌를 많이 했는지 알 수가 있다.

‘시는 말썽꾸러기 같아요. 어느 날 문득 찾아와서는 자기 이야기를 써 달래요. 그래서 쓰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스르르 사라져요. 어느 날은 자려고 누웠는데 속닥속닥 말을 걸어요. 그 말을 받아 적으려고 연필을 들면 또 사라지고 없어요. …. 잠시도 날 그냥 두는 법이 없어요. 그래서일까요? 시를 찾아다니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내가 지나쳤던 길옆, 골목과 변두리를 기웃거리게 되었어요. 『바람의 사춘기』에는 그렇게 만난 시들이 담겨 있어요.’

고작 한 살 더 많으면서/꼬박꼬박 나를 무시하는 언니/

이럴 때 난 사진을 꺼낸다/재작년에 찍은 언니 사진//

“야, 나보다 어린 게 어디서 까불어.”

-「언니에게 화를 내는 방법」 전문

늘 나(화자)를 무시하는 언니에게 직접 화를 낼 수 없어서, 재작년에 찍은 사진을 꺼내 든다. 분명 재작년이니까 나보다 어릴 테니 사진을 보고 한 소리 한다. “야, 나보다 어린 게 어디서 까불어.”하고 언니에게 받은 분노를 터뜨린다. 참 기발한 생각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사과나무 가지에 누워 자고 싶다/

“오늘은 바람이 잠잠하네.”/“그러게 바람 한 점 없네.”/

과수원 나온 아저씨 아줌마가 하는 말까지/잔소리 같아 짜증난다/

벌떡 일어나 사과나무 한 번 흔들어 줄까 하다가 관뒀다/

그냥 다 귀찮다.

-「바람의 사춘기」 전문

바람도 사춘기가 있나 봐. 우리들처럼 사춘기를 맞은 바람이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을 작품에 담아낸 것이다. 바람을 통한 우리들의 심정을 솔직하게 대변한 셈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박혜선 시인만이 가진 특이한 시적 감성으로 바람의 이미지를 찾아낸 것이다.

슈퍼 갈 땐/팔랑팔랑/앞서가더니//

학원 갈 땐/꾸물꾸물/뒤처져 온다.

-「그림자」 전문

이 동시집에 실린 49편의 작품들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놓치지 않고 있다. 남들보다 좀 색다른 생각으로 동시의 참맛을 살리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더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글•노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