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만에 나가 본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싱싱한 횟감으로 넘쳐났다.

“얘, 그래도 난 입맛이 촌스러워서 광어가 제일 좋더라.”

“음, 그래 넌 원래 촌스러웠지, 그럼 우럭에 광어 하나 하고, 조개도 좀 살까?”

“너무 많아, 전복이나 좀 사지.”

친구 둘과 나까지 세 사람은 저마다 말도 참 많았다. 집에 돌아오니 냉장고가 하나 가득이다.

“내일까지 세 끼를 먹어야 해. 많지도 않아.”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집은 아직 살림살이들이 완전하게 갖춰지지 않았다.

“2년 만에 조국 땅을 밟은 기분이 어때?”

“감개무량하다.”

“누가 들으면 반평생 외국 나갔다 들어온 줄 알겠다.”

우리는 다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남편 유학길에 아이와 함께 가족이 다 같이 떠난 지 2년 만에 아이와 나만 귀국한 참이었다.

“회가 참 맛있다. 미국서 이런 건, 진짜 귀해. 구경도 못했어.”

“많이 먹어. 저걸 언제 다 먹을지 모르겠더니 너 다 먹으면 되겠다.”

한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그래, 쟤나 다 먹이자. 넌 그래 어떻게 된 게……. 무슨 살이 이렇게 쪘어?”

내 귀국을 핑계로 모인 세 친구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이다. 그런데 우리가 얼굴을 보는 건 거의 3~4년 만이었다. 내가 미국 갈 때 만난다는 게 시간이 어긋나버렸던 거다. 두 친구 역시 다른 지방에 떨어져 살다보니 그간 만나지도 못했다고 한다.

“나 살 많이 쪘지? 그게 다…….”

친구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래도 많이 먹어라. 기왕 찐 살인데 생선회 좀 더 먹는다고 표가 나겠니?”

나는 얼른 젓가락을 들어 친구 손에 쥐어주고 접시를 들이밀었다.

“응, 난 좀 먹어야 돼.”

우리는 별 말 없이 음식을 한동안 먹었다.

“내가 고기 사 왔잖아. 이따 국수전골 해주려고. 조금만 먹어.”

다른 한 친구는 아까부터 좋은 고기 타령이더니 우리한테 전골 못 먹일까봐 전전긍긍이었다.

“넌, 왜 혼자 왔니? 네 남편 공부 끝나려면 몇 년 남았다며?”

“응, 뭐…….”

나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유학생활 내내 힘겨웠던 기억, 육아의 어려움, 말이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 가서 노란 눈동자를 마주치며 말을 할 때, 그 쪼그라드는 기분. 그런 걸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넌 관리 잘했다. 얘. 날씬하네.”

살이 많이 찐 친구 말이었다.

“난 새로 대학에서 공부해서 영양사, 한식 조리사, 양식 조리사 다 땄다. 그러느라고 너무 먹었나? 살이 좀 쪘지?”

“그게 좀이냐? 나는 너 무슨 병 걸린 줄 알았다. 살찌다가 죽는 병은 없을 테고, 무슨 병일까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가 버럭 화를 내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슬며시 일어나더니 냉장고를 열어 고기와 야채 등을 꺼내 놓았다. 남의 집 부엌에서 참 변죽도 좋았다.

“내 전골 한 번 먹어 봐. 내가 말이야…….”

친구는 도마에다 칼질을 하느라 말을 끊었다.

“내가 사장님이야 이제.”

칼질 소리가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다.

“애 아빠 가고 나서 이제 뭐……. 그대로 내가 곧 사장님이라고.”

칼질을 하다 말고 눈가를 비빈다. 올해 무안 양파가 유난히 맵다더니 참말인가 보다.